[역경의 열매] 신용원 (9) 결혼 보름 만에 신혼집이 중독자들 가정교회로

10평도 안되는 집에 20여명이 북적… 믿음의 아내, 불평없이 중독자 보살펴

입력 2015-04-23 00:18
[역경의 열매] 신용원 (9) 결혼 보름 만에 신혼집이 중독자들 가정교회로 기사의 사진
신용원 목사와 아내 안진숙 사모, 쌍둥이 딸의 모습. 신 목사는 “아내의 헌신 덕분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도소 사역을 하면서 연을 맺은 수감자들이 출소 후 찾아왔다. 마음을 잡고 살아보려 했지만 마약을 끊기 어려웠고, 그런 자신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에 의지할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절도나 사기 등에 비해 마약사범에 대한 인식은 훨씬 더 안 좋은 편이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지만 그들을 수용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교회를 개척한 것도 아니었고 개척할 돈도 없었다. 오갈 데 없는 8명을 나의 신혼집으로 데려왔다. 자연스레 가정교회가 형성됐다. 사람들은 점차 늘어 20명 이상이 되었고, 10평도 안되는 집은 포화상태가 됐다. 하지만 이들이 복음을 받아드리며 예배의 열기는 뜨거웠다. 찬양하고 기도하며 나중에는 빌라의 옥상에서 예배를 드렸다.

생각해 보면 나에겐 신혼기간이 없었다. 2001년 6월 결혼을 하자마자 보름 정도만 단둘이 살았을 뿐 이후 마약 중독자들이 집에 함께 머물렀기 때문이다. 아내에게는 늘 미안했다. 새색시가 마약에 취해 있던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얼마나 불안했을까. 사역을 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설 때면 혹여 집에 머물고 있는 이들이 아내에게 험한 짓을 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늘 아내의 안위를 위해 기도했다.

아내는 지금까지도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현재도 형편이 좋은 것은 아니다. 나와 아내, 그리고 쌍둥이를 포함한 세 딸은 한방에서 같이 지낸다. 아이들이 크고 사춘기가 시작되니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고 그럴 때 아버지로서 미안함이 있다. 하지만 아내는 항상 나의 편을 들어준다. 환경을 탓하지도 않는다.

아내는 내가 운영하던 재즈바의 손님이었다. 그렇게 자주 만나면서 교제를 시작했다. 후에 내가 마약을 했던 것도 알게 됐지만 꿋꿋하게 내 옆을 지켰다. 결혼을 한다면 이 여자와 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내는 내가 방황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열심히 할 사람’이 될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데이트를 할 때 내가 노점상 할머니나 노숙자들에게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수시로 사주고 했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따뜻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라 여겼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회심을 하고 목회를 하겠다고 하자 격려를 잊지 않았다. 주변 모두가, 심지어 나의 가족도 내가 목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반대했지만 아내는 날 지지했다. 좋은 목회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이 목사의 아내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만한 그릇이 아니라고 했다. 장모님의 반대도 매우 심했다. 당시 TV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내 이야기를 보시고, 내가 마약 중독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남편이 일찍 돌아가시고, 외동딸인 아내를 많이 의지하셨던 장모님의 입장에서는 나와의 결혼을 쉽게 허락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아내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하신 배필이라면 이 여자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당신의 사역을 같이 감당해 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다. 아내와 장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수시로 찾아갔다. 지극한 기도와 설득 덕분에 마침내 마음을 돌릴 수 있었고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아내는 딸들의 신앙교육에 힘쓴다. 다행히 자녀들은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잘 성장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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