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리포트, 한국이 위험하다] <6> 갈 곳이 없다 : 취업과 치료 거부하는 사회

복지부 지정 전국 22곳 중

강남을지병원ㆍ국립부곡병원

2곳이 중독치료 92% 떠맡아

치료 지원액 한 해 1억대 그쳐

지정병원 “치료할수록 손해”

마약 중독자 치료 거부하는 서울의 한 마약류 중독 치료보호지정병원. 마약류 의존자 정모씨 제공.

2016년 3월 15일 새벽, 필로폰을 투약한 정모(53)씨가 서울 정릉동 동네 상가에서 환각 증상을 보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정씨 모친(91)에게 연락하고 119 구급대와 함께 정씨를 인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하지만 병원은 “약물 환자는 못 받는다”고 거부했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마약류 중독 치료보호기관이 약물 남용자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 전국 22개 지정 치료보호기관 중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은 사실상 두세 곳뿐이다. 2016년 치료 252건 중 강남을지병원(146건)과 국립부곡병원(86건) 두 곳이 무려 92%를 맡았다. 나머지 20곳은 모두 5건 이하. 그마저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등의 요청을 받고 마지 못해 환자를 받은 경우가 대부분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결국 치료도 못하고 교도소로 갔다. 마약 전과 10범인 정씨에게 무의미한 옥살이(징역 1년 6개월)만 더해진 셈이다. 30년간 반복된 아들의 중독을 감당해온 노모는 병원 거부로 큰 상처를 입었다.

정부가 허울뿐인 지정 병원 수만 유지하는 사이, 병원 문을 두드린 마약 중독자들은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극심한 좌절감에 휩싸였다. 7~8년째 필로폰 중독에 신음하는 이모(28)씨도 지난해 6월 맨 정신에 수도권 한 지정병원을 찾아 입원을 호소했지만 거절 당했다. 약을 끊기 힘들어 아예 해가 뜨면 산에 올라가 있었다는 이씨는 입원을 허락하는 병원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반복된 문전박대를 당한 그녀는 알코올 중독까지 걸렸다.

병원이 마약 중독환자를 꺼리는 건 여러 사정이 있다. 우선 정부 지원 예산이 턱없이 적어 약물 중독환자를 치료할수록 병원에 재정 부담이 커진다는 점이다. 약물 중독자는 마약류관리법과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규정에 따라 최대 1년간 전액 무료로 치료비 지원을 받는데, 복지부의 2017년 치료보호 예산은 1억2,700만원이다. 홍보비 5,000만원 등을 뺀 실제 치료 지원액은 7,200만원에 그친다. 국비와 지방비 절반씩으로 이뤄지는 지원액은 1억 4,400만원쯤 된다. 외래치료는 월 50만원, 입원치료는 월 200만원 가량 든다는 점을 감안하면, 환자 6~24명의 1년치 치료비에 그친다.

민간 지정 병원은 각 시ㆍ도로부터 허용 가능한 자체 책정 지원 한도 예산액을 듣고 “이를 넘는 치료비는 청구하지 말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런 사정으로 외래치료만 하는 강남을지병원은 “받지 못한 누적 치료비가 5억여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국립부곡병원을 뺀 국립병원 4곳은 어떤 지원도 없이 자체 예산으로 충당해야 해 마약류중독 환자를 치료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여서 치료 유인이 떨어진다.

병원은 가뜩이나 수익성에 보탬이 안 되는 마약 중독 환자가 혹시 병동에서 다른 환자에게 마약을 퍼뜨리거나 자칫 환각 증세 등으로 사고를 일으키면 법적 책임도 질 수 있다는 우려로 더욱 꺼린다. 아울러 전문 의료진이 크게 부족한 데다 마약 중독 치료ㆍ재활에 별 의지가 없는 우리 의료현실도 약물 환자의 치료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는 실정이다.

마약중독 임상분야 전문가인 김낭희 박사는 “정부가 그 동안 대표성 있는 마약중독자 실태조사도 없이 치료 분야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며 “지정병원 운영현황을 점검하고, 관련 전문 치료자원 육성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mailto:hshs@hankookilbo.com)


http://www.hankookilbo.com/v/5634d20d32cd40738aaea9e8e7495b3c




[마약리포트, 한국이 위험하다] <2>상상 초월: 청정하지 않은 대한민국

#1

누범자들 출소 후 가장 힘든 점

“재범 우려” 47% “인간관계 단절” 30%

2013년 수감자 47%가 3년 후 재수감

강력범죄 중 재복역률 가장 높아

#2

사회 나가도 10명 중 7명은

“어떻게든 마약 구할 수 있다”

가족 단절ㆍ사회 냉대ㆍ구직난에

4명 중 1명 “극단적 선택 시도”

“마약을 하는 순간 감옥에 한 발을 걸게 된다. 한 달, 1년 뒤일지 몰라도 교도소에 들어가는 악몽은 되풀이된다.”

마약 중독자 김모(41)씨. 그는 고교 유학 때 친구들과 어울리며 대마를 맛봤고, 20대 땐 국내 중견기업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 일하던 중 약을 슬쩍 권유한 지인에게 팔뚝을 내주며 필로폰에도 빠졌다. 서른 살에는 집행유예 기간 중에 또 약을 해 2007년 첫 감방생활을 했다. 실수로 큰 교통사고를 냈다고 둘러대면서 직장을 잃었다. 그는 변하지 못했다. 실형을 두 번 더 살았고, 그 사이 참다 못한 아내는 떠났다. 바깥 볕을 쬔 지 약 2년. 그는 대출금을 못 갚아 채권자에게 집도 넘어갔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는 지금 포르노 편집으로 근근이 용돈벌이를 하고 있다. ‘남들은 회사에서 차장을 하고 역량을 발휘할 나이에 난 왜 이 모양인가.’ 그는 극단적 선택까지 간혹 떠올리곤 했다. 중독자의 비참한 쳇바퀴.

사회 나가도… 10명 중 7명 “어떻게든 마약 구할 수 있다”

김씨의 마약 인생은 대체로 마약류 사범의 현주소를 반영한다. 한국일보는 2016년 하반기부터 1년간 마약 중독자 갱생과 재활을 돕는 종교계 인사 도움을 받아 전국 교정시설 약 20곳의 전과 3범 이상 누범자 3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 271명(남성 266명, 여성 5명)의 응답지를 회수했다.

김씨처럼 ‘마약류를 처음 접한 나이’는 20대가 31.4%(261명 중 8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10대 25.6%(67명), 30대 24.1%(63명) 40대 16%(42명) 50대(6명) 60대(1명) 순이었다(10명 무응답). 응답한 재소자의 79.3%(215명)는 40대 이상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투약→체포ㆍ수감→투약의 쳇바퀴 생활을 반복한 셈이다. 교정시설을 반복해 드나든 전과 10범 마약 중독자 김모(52)씨는 “40대 이상이면 거의 다 3범 이상인데, 교정시설 안에서 끊고 싶단 생각은 하지만 남은 인맥도, 경제력도 없어 딱히 할 게 없는 무기력감에 결국 접하기 쉬운 마약에 습관적으로 손을 댄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교정시설을 나와서도 한 순간 방심에 마약의 늪에 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처지임을 인정한 마약 중독자들이 대부분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마약을 구할 수 있다”는 답이 절반(51.1%ㆍ응답한 266명 중 136명)을 넘었다. 확실한 주변 정리가 어렵고, 동네 선ㆍ후배나 교정시설 동료 등과 은밀한 관계망이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다. “위험 부담이 크긴 해도 구할 수 있다”는 답도 19.9%(53명)였다. 결국 마약 누범자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마약을 구할 수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10명 중 7명에 달하는 셈이다. 반면 ‘구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답은 28.9%(77명)에 그쳤다.

“교정시설 나온 뒤 또 손댈까 불안”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은 ‘교정시설을 나온 후 겪은 가장 힘든 점’으로 ‘재범 우려’를 가장 많이 꼽았다(46.7%ㆍ270명 중 126명). 둘 중 한 명꼴로 회전문 돌듯 다시 투약을 하고, 경찰ㆍ검찰에 체포돼 감방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했고, 이러한 걱정은 곧바로 현실이 되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처지다. 실제 ’교도소 출소자 죄명별 재복역률’(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실형을 산 마약사범이 2016년 다시 수감된 비율은 무려 47.2%에 달했다. 절도(46%) 폭력(33%) 강도(21.6%) 등 각종 강력범죄 가운데 가장 높은 재복역률이다. 인신구속 위주의 엄벌주의 정책으로는 마약 수요 억제에 근본적인 한계가 분명하다는 방증이다.

이들이 교정시설을 나온 뒤 겪은 또 다른 큰 고통(30%ㆍ81명)은 ‘가족과 인간관계의 단절’이었다. ‘사회적 냉대’와 ‘어려운 구직’도 각각 14.8%(40명)와 8.5%(23명)로 그 다음 난관으로 인식됐다. 두 아이의 아버지 김모(38)씨는 관계 단절로 극심한 외로움을 호소했다. 그는 고교 2년 때 친구가 건넨 진해거담제인 ‘러미나’(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지정된 덱스트로트로판)에 빠져 30대 중반까지 중독됐다. 처음에 12알씩 먹다가 나중에는 50알까지 삼키는 지경이 됐다. “직장에서 힘들어지니까 더 의존하게 됐다”는 그는 결혼 6개월 차에 집에 중독 사실을 털어놨다가 가정 파탄에까지 이르렀다. 충격을 받고 “그만 하라”는 아내의 경고에도 계속 약을 하다 걸린 그는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그는 “장모는 ‘이혼하라’고, 친부모도 지쳐서 ‘눈에 보이지 말라’고 한다”며 “고교생 때부터 약을 했으니 제대로 된 친구들마저 다 떠났다”고 말했다.

약을 계속하는 와중에 이런 저런 상실감이 누적되고, 그럼에도 약을 끊지 못한 극도의 자괴감, 좌절감에 휩싸여 생을 버리고 싶은 꿈을 꾸게 되는 것도 전형적인 패턴이다. 실제 4명 중 1명(24.4%ㆍ응답한 271명 중 66명)은 “약에 손을 댄 이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적 있다”고 답했다.

다만, 일반의 뿌리깊은 편견과 달리 스스로를 이겨내지 못할 따름이지, 마약 중독과 나쁜 일에 손을 대는 도덕성 상실의 직접적 인과관계는 없었다. ‘투약을 위해 불법에 가담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10명 중 7명(69.1%ㆍ269명 중 186명)이 “없다”고 답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도 2012년 연구보고서에서 “마약류 사범이 다른 범죄도 많이 저지른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치료 기회 거의 없어요.”

투약과 수감을 반복한 이들은 적극적인 약물치료ㆍ재활 기회를 좀처럼 갖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약 중독자 속성상 스스로의 의지에 기대서는 효과를 보기 어렵고, 재범 위험이 높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실제로 10명 중 8명 이상(84.3%ㆍ267명 중 225명)이 “자발적 약물중독 치료서비스 이용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대부분 사회 내에서 스스로 치료 받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비자발적인 약물 중독치료 경험’은 92.6%(응답한 269명 중 249명)가 “없다”고 답했다. 마약사범 치료(교육) 경험이 많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관계자는 “동일 전과가 많은 누범들은 수사기관에서 교정기관까지 각 단계에서 치료 받을 대상으로 선정되는 자체가 어렵다”며 “특히 교도소에서는 초범 등 소수만 완화처우(S2) 수감자로 선택을 받고, 누범자들은 이에 들지 못해 강화된 치료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반면, 마약 수사를 두고는 79.6%(응답한 265명 중 211명)가 “부적절하다” “문제투성이”라고 했다. 교도소 수감 생활을 경험한 마약 중독자의 편견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적절하다” “적절하다”고 답한 비율은 20.4%에 그쳤다.

이는 수사기관의 실적주의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누범자들은 검ㆍ경이 마약 공급책과 ‘처벌 수위 거래’를 하면서 단순 투약자를 줄줄이 엮고, 수사 협조를 명분으로 판매자의 핵심 범죄사실을 빼주는 실적 수사에 매몰돼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한국일보가 인터뷰한 수십 명의 마약 누범자들은 “마약 판매자가 자신의 고객을 무더기로 넘겨 단순 투약자보다 형량을 겨우 2~4개월만 더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성토했다. 마약 사범인 조모(53ㆍ최근 구속)씨는 지난해 말 국회 앞에서 “판매자를 엄벌해달라”는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수사기관과 한 편인 정보원(속칭 ‘야당’)을 통해 마약을 하도록 덫을 놓는 사실상 ‘미끼 수사’가 만연하다는 불만을 터뜨린 투약자도 더러 있었다.

마약중독 임상 분야 전문가인 김낭희 박사는 “지금처럼 투약-투옥 되풀이식 처벌위주보단 사법처리 과정에서 중독치료와 함께 재활 출구를 열어줘야 끝도 없는 악순환이 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mailto:hshs@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mailto: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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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리포트, 한국이 위험하다] <5>보름 합숙: 쉽지 않은 재활의 길

#1

교회 운영 출소자 재활공동체

합숙생활하며 치유 ‘고난의 길’

광고판 부착ㆍ이삿짐센터…

“땀 흘려 번 돈 아내에게 줄 거야”

#2

“일상이 공동체 안에 있어야 돼

개인 의지로는 유혹 못 이겨…

가족ㆍ고향 생각 절실하지만

끊을 때까지 악착같이 버텨야죠”

#3

보호관찰소에 가면 화만 나

인간말종으로 보는 분위기만…

“니코틴ㆍ알코올 중독처럼

우리도 환자로 봐줬으면 좋겠다”

마약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땀 흘려 일하는 재활공동체 구성원들. 이삿짐센터에 취직한 이채성(왼쪽)씨와 박진규씨가 함께 짐을 옮기고 있다. 박재현기자

“지금도 필로폰이라는 말만 들으면 몸이 먼저 반응해. 스스로 끊었다는 사람들 앞에 주사기 가져다 놓으면 벌벌 떨면서 주사기를 바로 꽂을 거야. 이건 절대 끊을 수 없어.”

일주일 만에 말도 없이 떠난 동료를 탓하기보다 감쌌다. 그 심정 이해한다는 투였다. 재활공동체에서 땀 흘려 일하면서 사회에 어엿하게 복귀할 날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살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던 그조차 잠시 눈치를 살폈다.

“아니, 당신은 10년이나 끊어오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고지가 저긴데, 걱정할 게 있냐는 바람을 담아서 그의 답을 기다렸다. 그는 중얼거렸다. “아주 지독한 저주 같은 거야.” 곁에 있던 동료가 거들었다. “필로폰의 끝은 자살이라는 말이 있어. 죽지 않는 이상 못 끊는다는 거야.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형벌이라고.”

그들은 그렇게 ‘절대 끊을 수 없는’, ‘가장 큰 형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자리에 최근 한국일보 기자가 비집고 들어갔다. 마약 중독을 벗어나 경제적으로 자립하려는 이들이 서로를 의지하는 재활공동체에서 함께 먹고 자기도 하며 보름을 보냈다. 편견의 더께를 조금이나마 벗겨내고 그들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들은 그저 인생의 낙오자거나 피해야 할 범죄자일뿐인가, 다시 우리와 어울려 사는 방법은 없는 건가, 재활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인가, 재활을 막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수많은 질문을 안고 그들과 호흡했다. 보름이라는 짧은 시간이 명징한 답을 주진 않았다. 다만 그들과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변화된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그 끝이 성공일지, 실패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그들은 매일 업보처럼 신화 속 시지프스의 돌을 밀어 올리고 있는 건지 모른다. 돌의 무게는 그들 스스로 만든 것이다. 인천 구월동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 교회’가 2001년부터 운영하는 출소자 재활공동체가 기록의 무대다. 마약류 투약 경험이 있는 신용원(53) 목사가 공동체를 이끌고, 진선규(59) 목사가 돕고 있다. 기자가 ‘나’로 등장하는 1인칭 시점으로, 신 목사를 제외한 공동체 일원은 가명을 썼고, 정확한 날짜는 적지 않았다.

1일차: 독한 마음 먹고 합숙 시작

“마약 하다가 최근 출소한 지인이 있어요. 그 사람도 이곳에 머물게 하고 싶은데 가능해요?”

김용훈(43)씨가 교회 사무실에서 물었다. 신 목사가 답했다. “지금은 못 받아. 조금이라도 의지가 약한 사람들이 있으면 다 물들어. 용훈씨도 고향 내려갈 생각하지 말고 여기 있어. 내려가면 바로 마약 생각날 거야.”

신 목사가 이것저것 설명했다. “중독자를 치유하기 위한 신앙공동체다. 중독자에게 일자리 마련 등 재활을 돕고, 그들과 가족들을 불러 예배하고 대화하며 치유하려고 한다. 매주 교회에 모여 서로의 절망과 희망을 공유하는 건 필수 행사다. 단약(마약을 끊는 것)을 굳게 결심한 사람들은 교회 인근에 마련된 숙소에서 정해진 일정에 맞춰 합숙 생활을 한다.” 신 목사 역시 마약을 경험했지만 신앙으로 단약에 성공한 사람이다.

용훈씨는 교회 근처 공동체 직업센터인 ‘야긴&보야스’ 사무실로 이동했다. 이 회사는 유동인구가 많은 버스정류장에 영상광고판을 부착해 광고비를 받고 있다. 투약자 5명이 근무하고 있고, 용훈씨도 이곳에서 일하면서 급여를 받게 된다.

오후 8시쯤 용훈씨는 예배에 참석했다. 참석 인원은 총 7명. 일부 투약자 가족들을 제외하면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마약’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예배와 친목도모 시간이 끝나자 용훈씨는 공동체 최동운 이사와 인근 공원을 찾았다.

시계는 오후 10시를 가리켰지만, 둘은 40분간 쉬지 않고 달렸다. 최 이사가 속 깊은 이야기를 꺼냈다. “나 있잖아. 장모님 생신잔치 때도 옷 갈아 입으러 다녀온다면서 마약하고 들어갔어. 그때 큰 애는 틱(tic) 장애, 작은 애는 자폐증이었어. 가족이 병든 건 내 탓이야.” 용훈씨는 묵묵부답이었다.

최 이사가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내가 회복되니 가족들도 달라졌어. 큰 애도 작은 애도 장애가 없어졌어. 아내도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고 있어. 그렇게 극복해가는 거야.” 용훈씨는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

부끄러운 과거를 털어놓으며 아픔을 공유하고자 하는 최 이사의 의도를 모르는 걸까. 용훈씨가 잠을 청하자 최 이사가 내게 말했다. “용훈씨 같은 투약자가 이곳까지 스스로 찾아왔다는 건 굳은 결심을 한 겁니다. 그런데 단약이 말처럼 쉽지 않죠. 유혹을 못 이겨서 공동체 생활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많아요.” 나는 걱정됐다. ‘용훈씨가 공동체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2일차: 누가 찾아왔다

오후 7시쯤 매주 한 번 열리는 공동체 모임. 중년 여성이 눈에 띄었다. 처음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신 목사를 중심으로 11명이 사무실에 둘러 앉아 ‘기다림’을 주제로 발언을 이어갔다. 중년 여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스무 살 된 제 딸이 필로폰에 중독돼 정신병원과 집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어요.” 특히 치료를 받고 있는데도 집 안에서 혼자 멍하니 망상에 빠지거나 폭력적 언행을 한다고 말할 때는 울음을 터뜨렸다.

듣고 있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들도 대부분 마약을 했던 사람들이다. “마약에서 벗어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딱 하나예요. 일상이 공동체 생활 안에 있어야 벗어날 수 있어요.” 합숙 이후 조용하던 용훈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멍하니 망상에 빠진 건 마약을 해서 그럴 수도 있어요”

중년 여성은 2시간 넘게 딸 상황을 설명했고, 나머지 10명은 자신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조언을 건넸다. “우리가 볼 땐 저 딸의 중독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해 보여요.” “그래도 이곳까지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는 엄마를 뒀으니 딸이 극복할 가능성은 충분해 보여요.”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길 바라며 잠이 들었다.

김용훈(왼쪽 두 번째)씨가 재활공동체 관계자들과 버스정류장 영상광고판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박재현 기자

4일차: 사랑하니까 멀어진 가족

용훈씨와 숙소에서 김치와 두부, 라면으로 아침을 대충 때웠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는 16㎡, 10㎡ 남짓 방 두 개가 전부. 큰 방은 진 목사가 쓰고, 작은 방은 숙소생활이 필요한 출소자들이 사용한다.

용훈씨는 오전 일찍 시내도로로 나가 가판대를 철거하고 디지털 광고판이 달린 새 가판대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전기 설비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테니 용훈씨는 전동 드릴로 가판대 나사를 풀어줘요.” 작업을 지시하는 최 이사 말을 용훈씨는 잘 따랐다. 처음엔 낯가림이 심했지만, 일이 익숙해지자 한결 편해 보였다.

그리고 입을 열고 과거를 고백했다. “필로폰으로 걸린 게 7번쯤 될 걸. 징역 산 기간만 4년이야. 20, 30대 땐 마약이라면 악마에게 내 인생을 바칠 수도 있을 것 같았지.” 최근까지 징역을 살다 나온 용훈씨는 아내와 가족이 있는 부산에 가고 싶지만 아직은 갈 수 없다고 했다.

“빨리 가고 싶지. 근데 ‘네 죄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절대 가족들 옆에 갈 수 없다. 가족에게 상처만 커진다’는 신 목사님 말에 우선 홀로 자립하려고 여기에 온 거야.” 마약을 끊으려는 사람에겐 환경이 가장 중요한 법. 부산에 가면 어울리는 사람들이 죄다 마약을 하는 사람이라 타지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게 더 낫다고 했다. 그가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유는 바로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6일차: 땀 흘려 버는 기쁨이 먼저다

새벽부터 부산했다. 마약에서 벗어나 번듯한 일거리를 찾기 위해 공동체에 들어온 박진규(42)씨와 이채성(42)씨 얼굴이 밝다. 아침부터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둘은 공동체 생활을 하며 단약한지 각 10년, 3년째다.

“이 일 시작한 지 사흘 밖에 안 됐는데 몸이 말이 아니네. 그래도 이제껏 날 기다려 준 고마운 아내 생각해서 정신차려야지.” 10년째 단약 중인 진규씨는 부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마약만 하지 말고 다니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부인 생각에 박씨는 공동체에서 주선해준 이삿짐센터에 취직했다. “내가 빨리 땀을 흘려 번 돈을 아내에게 가져다 줘야 해.” 그의 입에선 대부분 부인과 열아홉 살 된 딸 이야기만 나왔다.

진규씨가 일하는 도중에 채성씨를 탓했다. 채성씨가 일을 게을리한다는 이유였다. “이래선 우리 대접 못 받아. 이거라도 열심히 안 하면 뭐 하고 살 거야.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인식하겠어?” 진규씨 말에 채성씨가 화를 내면서 멱살잡이로까지 이어졌다. 두 사람을 간신히 뜯어 말렸지만 분위기는 차갑게 식었다.

그래도 진 목사는 둘을 바라보며 흡족해 했다. “땀 흘려 돈을 버는 건 재활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요.” 진 목사 역시 마약 투약자였다. 경찰 출신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지만 젊은 시절 조직폭력배와 어울려 서울 강남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흥청망청 돈을 쓰다가 우연히 마약에 손을 댔다. 필로폰을 비롯해 온갖 종류를 다 섭렵했다고 한다. 마약에 빠져 일상이 망가지니 쉽게 번 돈이 사라지는 건 ‘쏜 살’ 같았다고 한다.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가족마저 떠나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제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지만 일해서 돈 벌기가 쉽지 않았죠. 결국 쉽게 돈을 벌기 위해 필로폰 판매까지 손을 뻗었죠.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기쁨을 깨닫지 못하면 이런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어요.” 진 목사는 재활의 근간은 노동과 직장이라고 다시 한번 말했다.

7일차: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점심 무렵 용훈씨가 갑자기 나를 찾았다. “지금 어디야? 오는데 오래 걸려도 좋으니 점심 같이 먹자.” 평소 같지 않은 흥분된 목소리였다. 차로 30분이 걸려 용훈씨가 있는 순대국밥 집에 도착했다. 왠지 불길했다. 용훈씨는 소주 한 병을 이미 비웠다. 국밥은 밥알이 퉁퉁 불어 있을 정도로 한 숟가락도 뜨지 않았다. “마약 하면 가장 흔한 증상이 밥 못 먹는다. 식욕이 아예 없어진다.” 합숙생활을 시작하면서 신 목사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용훈씨는 나를 보자마자 인사도 거른 채 마구 말을 쏟아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내가 이런 대접 받으며 살 사람이 아니야. 지각 좀 했다고 화를 낼 수 있는 거야?” 일을 하다가 아마 관리자랑 다툰 모양이었다. “제발 진정해봐요.” 그랬더니 대뜸 마약 이야기를 꺼냈다. “나랑 어디 좀 가자. 그거 한번 해볼래?” “뭘 해봐요” “알잖아. 그거. 지금 당장 내가 구할 수 있어.”

그를 향해 버럭 화를 내면서 거듭 진정하라고 말했다. 그는 멍하니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여기 도저히 못 있겠다. 나 부산 간다.” 그는 이 말을 남기고 곧장 자리를 떴다. 용훈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뒤로도 보지 못 했다.

이날 숙소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저마다 용훈씨의 이탈을 아쉬워했다. “지독한 저주”라고 했다. 용훈씨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 교회에서 마약을 끊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숙소 모습. 16㎡, 10㎡ 남짓 방 두 개가 전부다. 박재현 기자

10일차: 감방 가면 복 받은 거다

“왜 꾸물거려요. 좋은 말 할 때 빨리 소변검사 끝내고 가요!”

“공무원이면 답니까? 왜 다짜고짜 화를 내요. 범죄자 취급하는 거야?”

채성씨와 함께 찾아간 인천의 한 보호관찰소에서 고성이 오갔다. 마약투약 혐의로 법원에서 보호관찰을 명령 받은 채성씨가 소변검사를 받기 위해 간 자리다. 이날 보호관찰소를 찾은 남성은 20여명 정도.

씩씩거리면서 사무실에서 나온 채성씨가 내게 말했다. “소변검사를 얼마나 자주하는 거냐고 물었을 뿐인데,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휘젓기만 하네.” 귀찮다는 식으로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화가 잔뜩 났던 거다. “말은 보호관찰인데, 실상은 범죄자 감시야. ‘너는 ‘뽕쟁이’니까 부르면 잔말 말고 소변검사 받으러 와라’ 이런 식인거지. 치료를 돕거나 사회로 복귀하는데 필요한 교육은 없고 무작정 감시만 하는 거야.”

흥분한 목소리는 신세한탄으로 변했다. “우리끼리는 감방 가면 차라리 복 받은 거라는 말까지 해. 마약 중독됐을 뿐인데, 사람 때리고 괴롭히고 잔인하게 죽인 사람보다 우릴 더 비하하잖아.” 채성씨는 소변검사 받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침착을 되찾았다. “자기 합리화하자는 게 아니야. 마약이나 하는 ‘인간 말종’으로 보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보니 마약을 다시 찾는 사람들이 많은 거야.”

채성씨는 “정부에서 우리 같은 사람에게 최소한의 도움의 손길이라도 뻗어줬으면 좋겠는데 교회나 자선기관 아니고선 관심도 없다”고 했다. ‘정부에서 뭘 해줬으면 좋겠냐’고 묻자, 그가 말했다. “처벌에만 치중하지 말고 우리를 환자로 봐줬으면 좋겠다. 금연이나 알코올중독 치료센터처럼 말이다.” 그의 기대 수준이 높은 걸까. 정부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13일차: 중독 부부의 소망

“누구나 선입견이란 건 있죠. 그런데 지내다 보니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게 없어요. 그걸 깨닫는 계기가 없었을 뿐입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있는 이삿짐센터업체 사장 정성훈(47)씨와 부인 옥정희(40)씨를 공동체 사무실에서 만났다. 마약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꺼려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성훈씨는 “일종의 투자”라고 답했다. 뜻밖이었다. “이분들의 의지에 투자를 하는 거죠. 지금껏 지켜보니 다른 직원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제 돈을 허투루 쓰는 게 아닙니다.”

성훈씨는 스스로 담배 중독자라고 말했다. “담배가 법으로 금지돼 있었으면 저는 지금쯤 이분들이랑 똑같은 범법자가 됐을 거예요. 그게 합법이냐 불법이냐 차이죠. 이슬람이나 일부 동남아국가에선 술 마시면 태형까지 받곤 하잖아요.”

성훈씨가 마약중독자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게 된 이유는 또 있다. 정희씨와 결혼하면서다. 정희씨는 5번이나 법의 심판을 받은 마약중독자였다. 성훈씨는 처음에는 정희씨의 과거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정희씨는 “남편이 뒤늦게 제가 마약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그건 과거일 뿐 지금 모습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해요.”

성훈씨는 방송이나 영화에서 마약투약자를 정신병자나 살인마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도 걱정했다. “마약에 중독돼 치료가 필요한 사람인데 가둬놓기만 하면 병이 나을까요? 소속감과 자존감을 찾을 수 있게 일자리를 지원해주는 일이 먼저 병행돼야 합니다.”

15일차, 공동체를 떠나는 마지막 날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다들 일터로 나섰고, 마약 이야기만 나오면 여전히 두려워했다. 용훈씨 일은 이미 잊혀졌다. 누군가 내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다. “편견을 거둬달라. 그리고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 반드시 재활에 성공하겠다는 다짐보다 더 무겁게 다가온 짧은 한마디였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http://www.hankookilbo.com/v/f1d07ee27afa47fb86cca9af9077c1cb

[마약리포트, 한국이 위험하다] <5>보름 합숙: 쉽지 않은 재활의 길


직업 통해 경제적 자립 필요하지만

대부분 영세사업체와 다름 없어

주변 냉소적 시선 탓 규모도 작아

“투약하다 보면 온전한 사회생활이 안 되는 건 당연한 거니까 처절하게 외로워. 약하고 나밖에 안 남으니까. 이 공동체가 그런 사람들을 외롭지 않게, 정상적으로 사회생활 할 수 있게끔 돕는 거지. 정부는 잡아넣는 것 밖에 안 해.”

이모(42)씨는 필로폰 투약으로 망가진 자신의 삶을 후회하며 간절하게 사회복귀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던 끝에 신용원(53) 목사가 운영해 온 재활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을 알게 돼 이곳에서 재활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이씨뿐 아니라 한국일보 특별취재팀이 만난 마약류 중독자들은 단약(斷藥)에 성공한 ‘선배’들이 운영하는 극소수 민간 재활 공동체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재활공동체다. 20년 전에 마약류를 끊은 신 목사는 신앙을 기반으로 중독을 견뎌 내고 직업 재활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직업교육이나 일자리 소개를 하기보다는 직접 마약류 중독자들과 직업재활 사업을 전개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벽을 넘기는 쉽지 않다. 그간 ‘소망을 나누는 떡집’ ‘고추장에 빠진 돼지’ ‘보리떡 다섯 개’ 등을 운영했지만 영세 사업체나 다름 없어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는 인천시내 버스정류장 등에 영상 광고판을 부착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민간 약물중독재활센터 서울 다르크(DARCㆍ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도 직업 재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서울 다르크는 역시 마약 중독자였던 원유수(52) 서울 다르크 시설장이 2012년 일본 다르크 회원들이 모금한 3,600만원을 지원 받아 국내에 설립한 공동체다. 원 시설장은 “마약류는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재발하지 않도록 완벽하게 근절할 수는 없다”면서 “직업을 갖고 돈을 버는 과정을 통해 잃으면 안 되는 것들을 늘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단약을 위한 동기부여에 가장 중요한 게 직업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다르크 역시 운영에 어려움을 겪긴 마찬가지다. 단약 후 사회복지사ㆍ약물재활복지사 자격을 취득한 원 시설장이기에 서울시로부터 일정 금액을 지원 받을 뿐이다. 게다가 주변의 냉소적인 시선 때문에 드러내놓고 재활공동체를 운영할 수도 없어 조그만 원룸을 얻어 소규모로 운영할 수 밖에 없다.

신용원 목사는 “모든 권한을 갖고 있는 정부가 마약 중독자의 치료ㆍ재활을 등한시하면서 민간활동에 일절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며 “이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정책적ㆍ경제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마약리포트, 한국이 위험하다] <5>보름 합숙: 쉽지 않은 재활의 길

직업 통해 경제적 자립 필요하지만

대부분 영세사업체와 다름 없어

주변 냉소적 시선 탓 규모도 작아

“투약하다 보면 온전한 사회생활이 안 되는 건 당연한 거니까 처절하게 외로워. 약하고 나밖에 안 남으니까. 이 공동체가 그런 사람들을 외롭지 않게, 정상적으로 사회생활 할 수 있게끔 돕는 거지. 정부는 잡아넣는 것 밖에 안 해.”

이모(42)씨는 필로폰 투약으로 망가진 자신의 삶을 후회하며 간절하게 사회복귀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던 끝에 신용원(53) 목사가 운영해 온 재활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을 알게 돼 이곳에서 재활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이씨뿐 아니라 한국일보 특별취재팀이 만난 마약류 중독자들은 단약(斷藥)에 성공한 ‘선배’들이 운영하는 극소수 민간 재활 공동체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재활공동체다. 20년 전에 마약류를 끊은 신 목사는 신앙을 기반으로 중독을 견뎌 내고 직업 재활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직업교육이나 일자리 소개를 하기보다는 직접 마약류 중독자들과 직업재활 사업을 전개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벽을 넘기는 쉽지 않다. 그간 ‘소망을 나누는 떡집’ ‘고추장에 빠진 돼지’ ‘보리떡 다섯 개’ 등을 운영했지만 영세 사업체나 다름 없어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는 인천시내 버스정류장 등에 영상 광고판을 부착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민간 약물중독재활센터 서울 다르크(DARCㆍ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도 직업 재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서울 다르크는 역시 마약 중독자였던 원유수(52) 서울 다르크 시설장이 2012년 일본 다르크 회원들이 모금한 3,600만원을 지원 받아 국내에 설립한 공동체다. 원 시설장은 “마약류는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재발하지 않도록 완벽하게 근절할 수는 없다”면서 “직업을 갖고 돈을 버는 과정을 통해 잃으면 안 되는 것들을 늘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단약을 위한 동기부여에 가장 중요한 게 직업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다르크 역시 운영에 어려움을 겪긴 마찬가지다. 단약 후 사회복지사ㆍ약물재활복지사 자격을 취득한 원 시설장이기에 서울시로부터 일정 금액을 지원 받을 뿐이다. 게다가 주변의 냉소적인 시선 때문에 드러내놓고 재활공동체를 운영할 수도 없어 조그만 원룸을 얻어 소규모로 운영할 수 밖에 없다.

신용원 목사는 “모든 권한을 갖고 있는 정부가 마약 중독자의 치료ㆍ재활을 등한시하면서 민간활동에 일절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며 “이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정책적ㆍ경제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http://www.hankookilbo.com/v/730c1dd9717f43eeb053c61eb1e961a5

인천문화예술회관,(사)소망을 나누는 사람들과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 체결

  • 도시미관 저해하는 포스터 부착방식을 대체할 구두수선대 LED전광판 홍보매체 활용

인천시(시장 유정복) 인천문화예술회관은 관내 가로가판대 및 구두수선대 LED 광고매체를 운영하는 (사)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이사장 신용원)과 지역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3월 31일 인천문화예술회관 귀빈실에서 개최된 이번 협약식에는 양 기관 대표와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의 문화예술 특히 공연예술의 효과적인 홍보방식과 상호지원방안을 협의했다.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 체결[사진=인천문화예술회관] 


그동안 전통적인 공연홍보 방식인 포스터 부착이 도시미관을 저해해 왔고 홍보의 효과성 측면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인천지역 139개소에 설치된 구두수선대의 면을 활용한 LED전광판은 공연홍보매체로서 새로운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심우식 관장은 “새로운 디지털 매체의 성공적인 공연예술 홍보의 정착을 위해 회관에서도 다각도로 공연정보를 제공하고, 가로가판대 LED전광판 공연홍보로 도심 이미지 개선에도 큰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사)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은 약물중독자와 그 가족들의 자활과 사회적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법인으로 다양한 사업을 개진하여 약물중독자들의 생산적인 직업활동을 돕고 교정기관을 통한 교육과 상담을 통해 의식개선을 추진하여 사회에 적응하도록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인천문화예술회관은 공연홍보매체에 관한 협력과는 별도로 (사)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을 통해 재활 중인 청소년들에게 각종 혜택으로 문화체험기회를 제공하기로 하였다.

 

http://www.ajunews.com/view/20170403084044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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