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용원 (8) 마약중독 치유 첫 단계 “성경 일독부터 하세요”

“중독자도 주님이 보내주신 동역자”… 성경 읽기 통해 하나님 체험케 해

입력 2015-04-22 00:21

[역경의 열매] 신용원 (8) 마약중독 치유 첫 단계 “성경 일독부터 하세요” 기사의 사진
19일 인천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 본부에서 신용원 목사(가운데)와 한순덕(왼쪽), 신동우 집사 부부의 모습.

하나님은 나를 홀로 두지 않으셨다. 나 혼자의 힘으로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교도소 마약사범 재활교육 사역을 하기로 결정했을 즈음 신동우 집사 부부가 나를 찾아왔다. 그들과의 만남은 지금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 공동체의 출발점이다. 또한 그 가정의 변화는 나의 소중한 간증거리다.

동우가 나를 찾아오게 된 것은 아내 한순덕 집사 덕분이다. 동우는 마약 중독자였다. 한 집사는 마약을 끊지 못하는 남편을 포기하려던 차에 신문에 실린 나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찾아온 것이다. TV 다큐멘터리 방송 이후 나는 몇 차례 언론과 인터뷰를 했었다.

처음 만난 동우에게서 나의 모습을 봤다. 초점 흐린 눈동자, 삶의 의욕을 잃은 모습이었다. 그는 20대 초반부터 각종 약물에 노출됐다. 한 집사와는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로, 한 집사는 동우가 마약에 노출된 것을 알고도 결혼을 했다. 당시 그녀는 중독의 무서움을 미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 후 히로뽕을 배운 동우는 마약사범으로 구속됐다. 한 집사는 남편 수발을 한 차례 들면서 현실과 마주했을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인식하기에는 부족했다. 동우는 아내에게 “다시는 마약에 손 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일순간일 뿐이었다. 이후에도 수차례 마약을 했고, 수감되기를 반복했다.

가족들은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한 집사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들 사이에 두 명의 아들이 있었지만 제대로 부모 노릇을 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수시로 잡혀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큰아들은 틱 장애를, 작은아들은 자폐를 앓았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한 집사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당시 교회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마약 중독자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교회에 가서 하면 목회자들이 당황했다고 한다. 당연하다. 보편적인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 아는 분야도 아닐 것이다.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으랴. 답답한 마음에 기도원에 찾아가 울며불며 기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은 변하지 않았다. 동우는 또 다시 수감됐다. 결국 그녀는 이혼하기로 결심했다. 그즈음 나의 인터뷰 기사를 본 한 집사의 언니가 그녀에게 전화를 했고, 기사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어차피 이혼할 바에야 마지막으로 희망을 가져보자는 생각에 한 집사는 나를 찾아왔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그날 밤 기도를 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동역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내가 어떻게 마약 중독을 극복했는지 말이다.

몇 개월이 지나 한 집사는 출소한 동우를 내게 데려왔다. 나는 동우를 만나자마자 말했다. “너는 나랑 성이 같으니 내 동생 해라. 그리고 너는 내 말만 따르면, 나처럼 하면 마약을 끊을 수 있다.” 얼마나 막연한 이야기인가. 아마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동우에게 성경 일독을 지시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체험하란 것이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동우는 한두 달 내 비위를 맞추면 내가 놓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성령님은 예상치 못한 곳에 임하신다. 성경을 읽으라는 나의 지시에 동우는 우직하게 따랐고, 결국 변화됐다. 마약을 끊게 됐다. 이후 동우 부부는 집사가 됐고 지금까지 교도소의 마약사범 재활 교육을 비롯해 나의 모든 사역의 든든한 조력자로 함께하고 있다. 그의 아들들은 틱 장애와 자폐 증상을 이겨냈다.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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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신용원 (7) 마약퇴치운동본부 “청소년 재활교육 맡아달라”

신학교서 ‘마약 극복한 인물’ 유명세… 아이들에게 경험 들려주고 기도해줘

입력 2015-04-21 00:20
[역경의 열매] 신용원 (7) 마약퇴치운동본부 “청소년 재활교육 맡아달라” 기사의 사진
국내 한 교도소에서 신용원 목사가 마약 사범 재활교육을 하고 있는 모습.
신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는 사람들을 피해 다녔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학우들과 정기적으로 기도모임을 가졌다. 단순히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간증하며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기도 했다. 나의 이야기는 학우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학교에서는 ‘마약을 이기고 회심한 인물’로 나름 유명세를 탔다. 이는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기에 과거의 내 삶을 솔직하게 간증했다. 처음에는 겁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의 회심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갔다.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교회 집사님 중 한 분이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 내 이야기를 전했고,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는 내게 본드 등 약물에 중독된 중·고등학생을 위한 재활교육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선뜻 수용하기는 어려웠다. 약물이라면 정말 징글징글했기 때문이다. 나는 마약 중독의 끝을 경험해본 사람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까지 했던 사람이다. 마약과는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만약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의 재활을 돕거나 돌보는 일을 하면 자연스레 마약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기도를 했다. 기도하는 가운데 자꾸만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누군가 내게 약물 중독의 위험성을 일찍 알려주었다면 조금 더 일찍 정신을 차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세상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약물에 빠져 일탈을 시작한 것이 청소년기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셨다.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약물에 빠진 청소년들을 만나보니 과거의 나를 보는 듯했다. 대부분이 불우한 가정환경에 놓여 있었다. 불공평한 세상에 나름 저항하려 했으나 결국 이기지 못하고 본드나 약물 등을 택했다. 아이들과 눈을 마주할 때마다 눈물이 났다. 동시에 이들에게 꼭 필요한 말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독은 세상 기준에서 볼 때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지만 성령께서 임하시면 한순간에 정리될 수 있다. 현재의 행동심리학은 중독을 ‘영적인 문제’라고 정의한다. 중독 상태를 일시적으로 중단시킬 수는 있지만 본질적인 것은 완벽히 치유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낸 것이다. 중단된 상태라면 언제든지 마약을 다시 시작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이 전해져야 마약 중독을 완벽히 끊을 수 있다.

당시 만난 아이들에게 내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들을 위해 강력히 기도했다. 그렇게 사역을 지속하고 있을 즈음 KBS에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내 삶을 소개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지금은 종영한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프로다. 참 신기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그 누구의 주목도 받을 수 없었던 나와 내 삶을 세상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것과 심지어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칭송받는 것 모두가 믿기지 않았다.

방송을 보고 한 교도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분이 연락을 하셨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마약사범들을 교육해 달라고 요청했다. 마약 중독자들을 회복시키고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들어 쓰신 이유가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온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마약 중독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기도 끝에 교소도 사역을 감당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나 혼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때에 맞게 적절한 동역자들을 붙여주셨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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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신용원 (6) “기도로 1등 하겠습니다” 34세에 신학대 입학

“목회의 길·섬길 이를 가르쳐주세요” 하루 3∼4시간 자며 2시간 이상 기도

입력 2015-04-20 00:09
[역경의 열매] 신용원 (6) “기도로 1등 하겠습니다” 34세에 신학대 입학 기사의 사진
개혁신학대학원대학교 졸업식에서 신용원 목사(왼쪽)의 모습. 신 목사는 “신학생 시절 금식기도를 하는 가운데 성령이 임하셔서 현재 사역에 대한 단초를 알려주셨다”고 말했다.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열정이 끓어올랐다. 하나님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은 신학을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귀결됐다. 가장 먼저 가족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삶을 봐온 이들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마약에 찌들어 살았고, 폭력배 등으로 타락한 생활을 일삼아 오지 않았던가. 계속 희죽희죽 웃었고, 틈만 나면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등 너무 변한 내 모습에 정신이 나갔다는 말을 했다. 형제 중에는 나를 보고 악귀에 씌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친구들도 내가 실성했다고 했다. 어떤 친구들은 내가 이런저런 사업을 하다가 마약 탓에 다 망가져서 이제 종교사업에 손을 대려고 한다 했다. 사이비 교주가 되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용원이 네가 신학교 가서 목사를 하면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 된 개혁신학대학원대학교를 무작정 찾아갔다. 입학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보를 얻고 준비를 시작했다. 내 나이 34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대학공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였지만 내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입학을 했지만 수업과정을 따라가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살다가 왔는데 무엇을 알 수 있었겠나.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의 신앙은 매우 순수한 상태였다. 방탕하게 살다가 진정한 신앙을 갖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외모만 보고 학교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그래서 학교에 가면 사람들하고 부딪히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다. 학교 끝나고, 노방전도하고 산에 기도를 하러 갔다가 바로 집에 갔다. 당시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제가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로 1등을 할 수는 없겠지만 기도로는 1등을 하겠습니다.”

한번 기도를 시작하면 기본적으로 무조건 2시간 이상은 지속했다. 잠을 3∼4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새벽기도, 산기도 등 할 수 있는 한 무조건 기도를 했다. 당시의 영적 갈급함은 너무도 심했다. 내가 어떤 전도자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1학년을 마치고 겨울방학 때 처음으로 21일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당시의 기도 제목은 단순했다. “내가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십시오.” 정확한 소명을 알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한국 땅에 수만명의 목회자들이 있는데 그중에 내가 어떤 목회자가 되어야 할지 너무도 궁금했다. 내가 섬길 이들이 누구일지 고민했다. 당시 생각한 대상은 청소년이었다. 나의 일탈이 시작된 것이 청소년기였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와 같이 방황하는 아이들을 위로하고 친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금식기도를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신학교의 선배와 동기들을 보면 모두가 “예수님 닮기 원한다”고 기도를 했다. 그 기도가 너무 추상적이라 생각했다. 나도 예수님을 닮고 싶은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와 닿지가 않았다. 그래서 답을 찾으려 했다.

금식기도 중에 성령께서 임하셔서 응답하셨다. “용원아 내가 고아와 과부와 병든 자들과 같이 먹고 마시지 않았느냐.” 그 음성을 듣고 정말 많이 울었다. 하지만 고아와 과부, 병든 자같이 소외된 이웃이 너무도 많은데 누구를 돌보고 복음을 전해야 할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런데 금식기도가 끝나고 내려오는 날 거짓말같이 마약퇴치운동본부라는 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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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신용원 (5) 간절한 기도에 마약보다 100배 강한 성령 체험

“하나님만 믿고 살겠습니다” 고백에 불덩이와 벅찬 감격이 내 몸 안으로

입력 2015-04-17 02:19
[역경의 열매] 신용원 (5) 간절한 기도에 마약보다 100배 강한 성령 체험 기사의 사진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 대성전 입구 전경. 신용원 목사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찾은 이곳에서 하나님은 강력한 성령 체험을 허락하셨다”고 말했다.
살려 달라는 기도를 하면서 동시에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은혜 받아야 내가 산다고 하셨다. 그런데 은혜라는 것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 아닌가. 순간 다음 기도가 이어졌다. “하나님, 내가 살고 싶은데 살아갈 자신도 없고, 나 살려면 당신이 주신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고 하나님만 믿고 살겠다고 고백했다.

절규 어린 고백 속에 성령 체험을 했다. 성령이 내 몸을 지배할 때 느낀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마약을 한 것보다 더 큰 행복감이었다. 마약은 쾌락의 정점을 느끼게 한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도 마약이 주는 것 이상의 쾌감을 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약 중독은 무서운 것이다. 한때 나는 마약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성령의 임재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상상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게 했다.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며 몸 안으로 불덩이가 들어오는 듯하면서 벅차오르는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확신에 찬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혹자는 이런 나의 경험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령 체험은 사람마다 다르며 획일적이지 않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 왜 이렇게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체험을 주셨을지 생각해봤다. 난 마약에 찌들어 산 사람이다. 하나님의 영이, 그 힘이 마약의 쾌감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나에게 그런 체험을 허락하신 것이다.

마약 중독자 자조·자활 사역은 엄청난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일이다. 흑암과 어둠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하나님께로 이끌려면 그런 어떤 유혹에도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마약에 흔들렸다가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유혹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과의 강렬했던 첫 만남을 항상 열망한다.

성령 체험을 하면서 방언의 은사도 받았다. 구르고 가슴을 두드리고 울고 웃으며 그 자리에서 8시간을 기도했다. 정신없이 시간이 가고 날이 밝았다.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얼굴에 비춰진 햇살은 전날 느꼈던 그것이 아니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던 나였다. 그런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는데도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손짓하는 듯 아름답게 보였다. 지나는 사람들이 다 선해 보였다. 모두가 형제요 자매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바울이 되었을 때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듬성듬성 머리털이 빠지고, 문드러진 치아의 몰골을 한 사람이 웃고 있었으니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여담이지만 현재 나의 치아는 대부분 의치다. 마약 탓에 다 상해버렸다.

그 길로 기도원에서 내려왔고, 부천으로 돌아왔다. 내가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 견딜 수 없었다. 노방전도를 하기로 결심했다. 전도의 방법도, 하나님 말씀도 몰랐지만 서울 신촌역과 경기도 안양역 앞에 가서 무작정 떠들어댔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하고,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를 했다. 그때마다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간이 지나며 하나님을 더욱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간증에서 더 나아갈 수 없었다. 하나님 성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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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신용원 (4) 뇌출혈로 쓰러지신 어머니 위해 눈물로 기도

72시간 혼수상태서 기적적인 회복… 감사는 그뿐 또다시 방탕한 생활

입력 2015-04-16 02:35
[역경의 열매] 신용원 (4) 뇌출혈로 쓰러지신 어머니 위해 눈물로 기도 기사의 사진
성찬식을 진행하고 있는 신용원 목사. 신 목사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손에서 마약을 놓지 못했다. 후유증으로 머리털은 빠지고 치아도 문드러져 갔다. 가족과의 관계는 당연히 악화됐다. 약을 끊으려고 한국을 떠났다.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지를 고민했다.

뉴질랜드에 있을 때였다.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형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갑자기 어머니가 쓰러지셨고, 혼수상태라고 했다. 불과 얼마 전인 어버이날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었는데 당시 어머니가 머리가 무겁고 아프다고 하셨던 기억이 났다. 의사는 감기라고 진단했지만 오진이었다. 뇌출혈이었다. 어머니가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당장 귀국했다. 병실 앞에서 절규했다. 하나님께 어머니를 살려주면 마약을 끊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겠다고 울면서 기도했다. 가족 모두의 간절한 염원에 대해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어머니는 72시간 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나셨다. 정말 다행인 것은 뇌출혈을 앓은 대다수가 후유증으로 풍이 든다고 하는데 어머니는 이를 겪지 않으셨다. 만약 그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면 후에 내가 회심하고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나 사역을 시작할 때, 나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께서 완전히 회복하시고 집안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혹시 어머니가 다시 쓰러지실까봐 해외에 나갈 생각을 접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나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에 대한 감사를 금방 잊어버렸다.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했으리라. 어머니가 아프셨을 때는 다급한 마음에 하나님을 찾았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내 바람을 들어주면 따르겠다는 치기 어린 기도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조차도 예쁘게 보셨고 응답하셨지만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가장 든든한 지지자를 살려주셨는데도 나는 약속으로 내걸었던 변화된 삶을 살지 못했다. 방황과 방탕의 시간은 계속됐다. 20대 후반부터 사채사업을 하거나 재즈바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또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 결국 마약사범으로 여러 차례 수감생활을 했다. 수감생활을 하고 나면 자연스레 그간 이뤄놨던 사업의 성과들이 무너지기 마련이다. 돈도 잃고, 친구도 잃었다. 마약은 자아를 파괴시키고 무력감에 빠져들게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웃과 화목을 이룰 것을 권면하지만 마약은 사람들과의 관계와 자신의 내면을 파괴한다.

앞서 말했듯 마약 중독의 말로는 죽음이다. 마약 탓에 연거푸 수감생활을 하고 사업에 실패했지만 끊지 못했고, 그렇게 몇 번 동일한 과정이 반복되자 나는 지독한 상실감에 빠졌다. 그리고 스스로 생명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뭘 해도 마약 때문에 안 될 것 같았다. 자살을 시도하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장소는 경기도 파주에 있는 오산리 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이다. 왜 그곳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죽기 전에 하나님께 마음껏 따지고 싶었던 것 같다. 목 놓아 울며 기도하는 사람들 틈에 자리를 잡았다. 무엇을 간구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다 놓아 버리려고 하니까 마음이 편안한 것 같으면서도 이렇게 인생이 끝난다는 것에 대한 허무함도 있었다.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뒤엉켜서 지나갔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입에서 먼저 나온 기도는 단 한 문장이었다. “하나님 살고 싶어요.”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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