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과 일로 `마약의 유혹` 떨친다

(::인천 마약 재활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

고추장에 살짝 찍어 깻잎에 싸먹는 찹쌀순대는 맛이 있었다. 마약 치료·재활 공동체인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인천시 연수구 청학동의 순대전문점을 찾은 것은 지난달 29일 늦은 오후. 공동체 식구들은 저녁장사 준비를 하느라 일손이 분주했다. 공동체를 운영하는 신용원 목사는 이날도 서울 성동구치소에서 마약사범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강연을 하고 오느라 30분 늦게 도착했다.

“마약중독자들이 교도소 수감생활을 마치고 전문병원에서 치료 하는 것으로는 마약과의 질긴 고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이 재활해 직업을 가지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마약을 물리치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해요.”

신 목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마약으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은 결국 은 ‘빵’문제로 귀결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목사에 따르면 마약경험자들은 마약복용 중단으로 인한 금단 증상보다 사회부적응, 경제적인 곤란 등으로 좌절이나 절망을 느낄 때 훨씬 더 마약의 유혹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하는 대마초나 히로뽕 등의 마약은 헤로인 등 서양의 합성마약 보다 중독성이나 금단증상이 훨씬 덜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마약경험자들의 심리를 잘 아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많이 해봐서 안다”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신 목사는 실제로 마약으로 청년기를 보냈다. 고교때 처음 본드 에 손을 댄 이후 15년 이상 해보지 않은 마약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마약 때문에 교도소에도 두 차례 갖다왔고 환각상태에서
자살을 기도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추락을 거듭하던 그는 한 목사를 만나 인생항로를 180도 바꿨고 신학대를 나와 목사가 됐다.

신 목사가 인천에 개척교회 겸 마약치료·재활공동체를 연 것은 지난 2001년. 마약중독자가 진정 마약을 끊는 것은 자활이라고 판단해 공동체를 만들었다. 처음엔 식구 2명으로 단출하게 시작했으나 신 목사가 중독자들의 심정을 워낙 잘 아는지라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점차 늘어났고 지금은 마약경험자들과 그 들의 가족을 합치면 공동체 식구가 40명이 넘는다. 지난해 8월에는 부산시 수영동 팔도시장 내에도 쉼터형태의 공동체를 개설해 20 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전국 최대 규모의 마약재활 공동체일 것 이라고 자리를 같이한 양윤성씨가 거든다.

이들은 자활을 위해 2002년에는 떡공장을, 2003년에는 순대전문점을 차렸다. 압력반죽기 등 떡기계는 경기도 기흥의 한일식품에서 쾌척했다. 떡공장 ‘보리떡 다섯개’의 신동우 생산팀장은 “맛 하나만큼은 최고”라고 자신했다. 신씨는 2년 동안 수감생활 했던 영등포 교도소에 직접 만든 떡을 납품하러 갔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했다.

요즘 신 목사의 안색은 밝지 않다. 장기 경기침체 탓인지 최근 공장기계가 돌지않는 날이 더 많기 때문이다. “교도소, 구치소, 보호관찰소 등의 교정시설에 떡을 납품할 수만 있다면 마약경험
자 500여명의 자활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들의 자활을 돕는 공공기관이 전무한 상태에서 정부가 조금만 도와주면 민간기관에서 정부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목사는 요즘 한 달에 20일 정도 전국의 교정시설을 돌며 마약사범들을 만난다. “한 두시간의 상담과 강연으로 이들의 마음이 바뀐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출소 이후 치료·재활 프로그램을 제대로 받으면 정상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불어넣죠.”

마약중독의 굴레를 벗고 마약퇴치운동본부 인천지부에서 4년 동안 상담사로 일했던 양씨는 “특히 청소년 중독자들의 경우 이들의 마음을 만져줘야 진정한 상담이 이뤄질 수 있다”며 “상담기능이 더 활성화되면 중독자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씨는 마약중독자가 수십만명에 달할 것이라며 정부가 적극적인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약치료병원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박정배(가명)씨는 “한국과 미국의 중독자들이 주로 하는 마약은 다른데 재활치료프로그램은 미국식이어서 갓쓰고 양복입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
는 또 “병원에서 중독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신경안정제와 항갈망제를 처방하고 의사 앞에서 반드시 먹어야 하는데 이 약에 중독 돼고통을 겪는 환자들을 흔히 봤다”며 체험을 털어놨다. 선별적인약물투여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신 목사는 마약경험자들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수차례 강조했다. “우리 이웃들이 편견없이 따뜻한 마음으로 마약경험자들을 대한다면 이들이 마약끊는 일은 담배끊는 것 보다 오히려 쉬울 것입니다.” 후원문의 032-818-8410, 011-9054-7815

인천〓한평수기자 psha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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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신용원 (12·끝) “마약 극복, 우리는 주님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직업재활·영적훈련 통해 중독 치유, 중독자들의 가로정비사업 큰 호응

입력 2015-04-28 00:26
[역경의 열매] 신용원 (12·끝) “마약 극복, 우리는 주님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기사의 사진
신용원 목사(오른쪽)와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 공동체’ 가족들의 모습. 신 목사는 “공동체 식구들이 함께 예배하고, 일하며 서로의 든든한 지지자가 됐다”고 말했다.
우리 공동체는 마약중독자들을 대상으로 영적치료와 가족치료, 직업재활치료를 시도하고 있다. 중독자의 환경과 영성변화를 추구하고 결과적으로 진정한 회복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지한다. 구성원들은 수평적 조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친구가 된다.

영적치료의 핵심은 기독교 신앙생활을 통해 위대하신 하나님의 힘에 의한 영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매주 두 차례의 예배를 통해 회복을 돕고 본인이 희망하면 매일 일과가 끝난 후에도 영적 훈련 시간을 갖는다. 영적훈련을 통해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마약의 위험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한다.

마약중독자들에게 가족과의 관계 회복은 중요한 치료과업 중 하나다. 치료 과정에 그들의 가족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가정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동병상련이어서 서로의 상황을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성된 네트워크는 중독자들의 재활을 위한 든든한 지지망이 된다. 중독자와 배우자, 자녀들이 함께 모여 야유회와 체육대회, 영화관람 등 다양한 단체활동을 하고 있다. 중독자의 배우자들이나 자녀들이 서로의 아픔에 공감한다. 또 다른 중독자 가정의 어린 자녀들을 돌보며 상호 지지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사회에서 소외받고 멸시받던 이들에게 ‘가족의 형성’이란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경험이다.

사회적 격리나 입원치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부적응 문제를 직업재활치료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직업자활을 통해 중독자들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고 새로운 직업환경을 조성해 마약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 공동체는 2012년 ‘야긴앤보아스’라는 이름으로 인천시 가로정비사업 직업재활사업장을 개소하고, 현재도 지역 내 구두 수선대와 가로판매대 교체 작업 등을 하고 있다. 2014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가로정비사업을 담당할 사회적 기업을 물색하던 인천시가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에게 제안을 해왔다. 청소년 쉼터 등에 떡을 나누는 사업을 벌이는 등 지난 시간 동안 지역사회를 위해 노력해온 점을 높게 산 것이다. 가로정비사업을 통해 모양이 제각각이고, 노후한 시설물을 표준 디자인으로 교체해 쾌적하고 편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그가 세우실 것이다’라는 의미의 야긴과 ‘그에게 능력이 있다’라는 뜻의 보아스는 예루살렘 성전의 거대한 놋 기둥들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마약중독을 극복한 이들이 사회의 건전하고 든든한 기둥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이름을 지었다. 마약중독자의 회복은 중독자들이 직업을 가지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함으로써 지속될 수 있다. 대부분의 마약중독자들은 사회부적응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좌절감과 절망을 느끼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다시 마약의 유혹에 빠진다. 가로정비사업의 성과도 좋아 인천시는 지난해 행정자치부가 개최한 지방예산 효율화 우수사례발표대회에서 세출절감 부문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돌아보면 삶의 순간이 역경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순간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극복했으니 마냥 역경이 아니라 축복이라 할 수 있겠다. 대단한 성과를 이루거나 세상의 기준에서 볼 때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때문에 어찌 보면 이렇게 신문지면에 나의 이야기를 소개한 것이 부끄럽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사는 사람이기에 난 행복하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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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신용원 (11) 순대공장·떡 판매사업 실패… 신용불량자 전락

‘마약중독자들이 만든 제품’ 의심받아… 옥상 올라가 “돈 필요해요” 눈물 기도

입력 2015-04-27 00:13
[역경의 열매] 신용원 (11) 순대공장·떡 판매사업 실패… 신용불량자 전락 기사의 사진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의 직업재활 사업장 ‘보리떡 다섯 개’에서 신용원 목사(앞줄 오른쪽)와 공동체 식구들의 모습
마약중독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내면의 회복이 일어나고 가정이 회복되는 것을 보며 많은 감동을 느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면 안된다. 그들은 어찌됐건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건강한 구성원으로 서야 한다. 직업재활훈련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야심 차게 시작한 순대공장의 출발은 괜찮았다. 나와 공동체식구들 모두 이 일에는 완전한 초보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지만 즐거웠다.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순대를 만들어 납품하고 거래처도 점차 늘어났고, 공동체 식구들은 일하는 기쁨과 노동의 대가로 돈을 벌게 되는 보람을 다시금 느끼면서 행복해했다. 어떻게 이야기를 들었는지 언론사에서 찾아왔다. 마약에 중독 됐던 사람들이 약물의 유혹을 이겨내고, 순대를 만들어 팔고 있으니 충분한 이야기꺼리가 될 것이라 생각했었나보다.

인터뷰도 하고, 여러 가지 취재도 해갔다. 방송에도 소개가 됐다. 내심 기대를 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관심을 끌어서 장사가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방송이 되고 난 후 오히려 손님의 발길은 뚝 끊겼다. 마약에 중독 됐었던 이들이 만드는 순대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강한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다. 주변의 여론도 안 좋아졌다. 먹기가 찝찝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혹여 마약을 한 상태에서 순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았다. 마약에 대한 냉소적 시선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결국 이 주홍글씨는 지울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절망스러웠다. 결국 순대공장의 문을 닫았다. 마음을 잡고, 매일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렇게 망해야만 하느냐며 떠나가는 이들도 생겼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다는 생각에 다른 일을 또 해보기로 했다. 은행에 가서 방송에 나온 내 이력을 걸고, 담보도 없이 사정사정해 대출을 받았다. 빚을 얻어서 떡을 만들고 판매하는 가게를 차렸다. 떡을 교도소에 납품 하려고 생각했다. 마약사범이었던 이들이 중독을 극복하고 열심히 일해 만든 떡을 재소자들에게 전달하면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심지어 떡에 몰래 마약을 넣어 재소자들에게 전달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까지 받았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업의 실패로 나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집도 경매를 당하는 등 어려움에 직면했다. 단 한 번도 물질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적이 없었는데 하루는 너무 답답해서 옥상에 올라가 “나 돈이 필요해요 하나님. 저 좀 살려주세요”라며 울며 기도하기도 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헤쳐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주변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고, 다시 재활사업에 도전했다. 전에 도전했던 떡 공장 재활사업장을 다시 해보기로 했다. 이름은 ‘보리떡 다섯 개’. 민간시장을 대상으로 떡을 판매하고, 이곳에서 얻은 수익의 일부를 환원하는 사회적 기업 형태였다. 다행히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인천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안기획사업의 일환으로 수행되기도 했다.

앞서 2005년, 나는 세계마약퇴치의날 기념 국민근정포장을 수상했다. 엄청난 성과는 아니지만 나와 우리 공동체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됐다. 더욱 열심히 하라는 격려 같았다. 마냥 외면 당하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 참 외로웠는데 조금씩 인정을 받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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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신용원 (10) 중독자 사역의 가장 큰 좌절은 사람에 대한 실망

어머니와 아내의 응원에 시련 극복… 후원금·대출로 자활 위한 순대공장을

입력 2015-04-24 00:09
[역경의 열매] 신용원 (10) 중독자 사역의 가장 큰 좌절은 사람에 대한 실망 기사의 사진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의 가족들이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습.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신뢰는 언제고 깨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하는 존재다. 예수님도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

사역을 하면서 맛본 가장 큰 좌절은 사람에 대한 실망이었다. 나를 찾아와 함께 머물던 중독자들을 신앙교육을 통해 치유하려 했지만 믿음의 뿌리가 없기에 쉽게 흔들렸다. 중독자끼리 모여 있다 보니 누군가 마약을 몰래 가지고 와서 다시 공급을 하면 그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열심히 재활훈련을 하고 예배를 드리던 친구들이 마약의 유혹에 다시금 무너져 교도소로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하지만 더욱 속상한 것이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까 내가 점점 익숙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누군가 체포를 당했다고 하면 목 놓아 대성통곡을 했다. 며칠 밤을 새워가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지만 몇 번 동일한 일이 발생하니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약간 아쉬울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미안하다.

당시 찾아오는 이들을 더 이상 집에서 수용할 수 없어 인근에 조그만 공간을 얻었다.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의 교회’라고 부르기로 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 그곳에서 예배도 드리고 재활교육을 했다. 어느 날 철야가 끝나고 공동체 사무실에서 내려가는데 건물이 참 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내가 처한 현실이 처량했다. 나름 의욕을 갖고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는데 별다른 성과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가 타고 낡고 더러운 계단이 나의 모습 같았다. 가치가 없어 보였다.

내가 기죽어 있으니까 아내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이야기했다. “남편, 이 계단의 흔적이 부끄럽고 해어졌지만 기죽지 마세요. 기댈 곳 없고, 위로해 줄 사람 없는 이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은 하나님의 상급이에요.” 그 말이 참 위로가 됐다. 약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격려도 힘이 됐다. 어머니는 내가 방황하던 17세부터 34세까지 17년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를 위해 새벽기도를 하셨다. 목사가 된다고 했을 때 처음엔 놀라셨지만 점차 든든한 응원군이 되셨고, 내가 목사 안수를 받았을 때는 만세를 부르며 좋아하셨다. 이 사역을 시작했을 때도 역시 “너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겠다”며 쉬지 않고 기도를 하고 계신다. 든든한 동역자로 서 있는 두 사람 덕분에 흔들리는 마음을 잡았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재활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문제가 뒤따랐다. 바로 돈 문제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내가 엄청난 부자이거나 후원을 넉넉하게 받는다면 재활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헌금을 낼 수 있는 형편들이 못됐다. 마약을 했다고 소문이 나면 아무리 끊었다고 말을 해도 재취업이 너무도 힘들다.

공동체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했다. 이들이 자립적으로 사업체를 운영한다면 이 역시 재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마약을 끊고 모여 함께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도 우리를 인정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특별한 기술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은 순대 공장이었다. 누구나 조금만 배우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약간의 후원금을 모으고 은행 대출을 받아 인근 시장에 100평짜리 순대 공장을 차렸다. 이들과 함께 순대를 만들어 납품을 하면서 차근차근 나아질 생활을 꿈꿨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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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신용원 (9) 결혼 보름 만에 신혼집이 중독자들 가정교회로

10평도 안되는 집에 20여명이 북적… 믿음의 아내, 불평없이 중독자 보살펴

입력 2015-04-23 00:18
[역경의 열매] 신용원 (9) 결혼 보름 만에 신혼집이 중독자들 가정교회로 기사의 사진
신용원 목사와 아내 안진숙 사모, 쌍둥이 딸의 모습. 신 목사는 “아내의 헌신 덕분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도소 사역을 하면서 연을 맺은 수감자들이 출소 후 찾아왔다. 마음을 잡고 살아보려 했지만 마약을 끊기 어려웠고, 그런 자신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에 의지할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절도나 사기 등에 비해 마약사범에 대한 인식은 훨씬 더 안 좋은 편이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지만 그들을 수용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교회를 개척한 것도 아니었고 개척할 돈도 없었다. 오갈 데 없는 8명을 나의 신혼집으로 데려왔다. 자연스레 가정교회가 형성됐다. 사람들은 점차 늘어 20명 이상이 되었고, 10평도 안되는 집은 포화상태가 됐다. 하지만 이들이 복음을 받아드리며 예배의 열기는 뜨거웠다. 찬양하고 기도하며 나중에는 빌라의 옥상에서 예배를 드렸다.

생각해 보면 나에겐 신혼기간이 없었다. 2001년 6월 결혼을 하자마자 보름 정도만 단둘이 살았을 뿐 이후 마약 중독자들이 집에 함께 머물렀기 때문이다. 아내에게는 늘 미안했다. 새색시가 마약에 취해 있던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얼마나 불안했을까. 사역을 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설 때면 혹여 집에 머물고 있는 이들이 아내에게 험한 짓을 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늘 아내의 안위를 위해 기도했다.

아내는 지금까지도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현재도 형편이 좋은 것은 아니다. 나와 아내, 그리고 쌍둥이를 포함한 세 딸은 한방에서 같이 지낸다. 아이들이 크고 사춘기가 시작되니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고 그럴 때 아버지로서 미안함이 있다. 하지만 아내는 항상 나의 편을 들어준다. 환경을 탓하지도 않는다.

아내는 내가 운영하던 재즈바의 손님이었다. 그렇게 자주 만나면서 교제를 시작했다. 후에 내가 마약을 했던 것도 알게 됐지만 꿋꿋하게 내 옆을 지켰다. 결혼을 한다면 이 여자와 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내는 내가 방황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열심히 할 사람’이 될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데이트를 할 때 내가 노점상 할머니나 노숙자들에게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수시로 사주고 했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따뜻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라 여겼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회심을 하고 목회를 하겠다고 하자 격려를 잊지 않았다. 주변 모두가, 심지어 나의 가족도 내가 목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반대했지만 아내는 날 지지했다. 좋은 목회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이 목사의 아내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만한 그릇이 아니라고 했다. 장모님의 반대도 매우 심했다. 당시 TV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내 이야기를 보시고, 내가 마약 중독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남편이 일찍 돌아가시고, 외동딸인 아내를 많이 의지하셨던 장모님의 입장에서는 나와의 결혼을 쉽게 허락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아내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하신 배필이라면 이 여자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당신의 사역을 같이 감당해 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다. 아내와 장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수시로 찾아갔다. 지극한 기도와 설득 덕분에 마침내 마음을 돌릴 수 있었고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아내는 딸들의 신앙교육에 힘쓴다. 다행히 자녀들은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잘 성장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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